설명 |
이 가옥은 조선전기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孟思誠 : 1360~1438)이 살던 집이며, 현재 남아있는 살림집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다. 원래 고려 말 장군이었던 최영이 지은 집으로 그의 손녀사위인 맹사성이 물려받았으며 맹사성의 후손들이 관리하며 유지되던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집은 그 사이에 여러 번 개보수가 이루어졌는데, 1964년 보수당시 종도리 받침장혀의 묵서의 의하면 1482년 10월 6일 당시 집주인인 호군 맹석준이 손좌건향(巽坐乾向 : 북서향)이었던 집을 정좌계향(丁坐癸向 : 북동향)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묵서에서 그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다. 1754년의 보수 기록에도 그 사실이 다시 언급되어 있고, 현재 집의 좌향이 일치하여 좌향을 바꾼 사실만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맹씨행단은 마을을 향해 올라가는 길을 따라 흐르는 좁은 개울의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솟을지붕이 있는 7간의 문간채를 들어서면 현재도 후손들이 살고 있는 안채가 나오고 그 우측으로 높은 단위에 행단이 북동향하여 앉아 있다.
집의 마당가 단(壇)에는 600년 이상 된 은행나무가 두 그루 서 있는데 '행단(杏壇)' 이란 명칭은 이 은행나무가 있는 터로 선비가 학문을 닦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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