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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관아는 홍주성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홍주관아는 고려 성종 때 홍양현은 신설하고 도단련사를 두면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번에 걸쳐 행정구역이 바뀌고 강등, 승격을 거듭하면서 관아건물 또한 변천이 심했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홍주목사 한응필이 1870년 홍주성 성역공사를 하면서 당시 건물 기록을 남겨두었는데 목사 관련 시설로 동헌은 책실, 내아, 급창방, 사령창, 관처으 공고,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었고 행정실무 관련 시설로는 향청, 작청, 장청, 관노청, 토포청, 장관청, 도청, 사창고, 군기청, 군기고, 옥 등이 있었다. 이 밖의 시설물로 객사, 남관, 사달정, 애련당, 청수정, 여하정, 취은루, 계풍루 등이 있었다고 한다.
1871년 제작된 '홍주지도'는 당시 성역공사가 끝난 직후여서 홍주성 내의 여러 관아시설이 비교적 잘 기록되어 있다. 이 지도에는 개사, 동헌, 내아, 책실, 급창방, 공고, 공수, 내삼문, 외삼문, 사령청, 사달정, 작청 등이 있었음을 증거해 주고 있다.
조선후기까지는 비교적 많은 건물들이 남아있었으나 그 후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거의 훼철되거나 매각되어 사라지게 된다. 이 중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는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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